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무너진 세상에서 인간은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던진다. 나는 30대,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나의 삶과 생각을 공유하는 인플루언서로서 이 영화를 보며 마치 낯선 거울 앞에 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시가 무너진 후에도 남아 있는 건물,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선택과 침묵, 비겁함과 용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우리의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현실보다 더 날 것 같은 배경, 콘크리트로 만든 생존의 도시
서울이 무너졌다. 대부분의 건물이 폐허가 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황궁아파트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안식처이자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이 안식처는 금세 '성역'이 아닌 ‘경계선’이 되어버린다. 내부에 들어온 자는 살고, 바깥에 남겨진 자는 죽는다. 참 단순하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 바로 잔혹함이다. 영화는 이런 공간 배경을 통해 우리가 사는 ‘도시’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화려한 콘크리트의 겉면을 벗기면 결국 남는 건 서로를 의심하고 밀어내는 생존 본능뿐일까? 현실에서도 우리는 ‘안전한 구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있진 않은가. 마치 황궁아파트처럼.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아파트를 유지하기 위해 내부 사람들 스스로가 ‘질서’를 만든다는 점이다. 그 질서가 법이 되고, 명분이 되고, 결국 폭력이 된다. 어떤 모습은 너무 현실 같아서 소름이 끼쳤다. 현실 속에도 누군가는 잣대를 정하고, 누군가는 따르고, 누군가는 침묵한다. 그것이 꼭 생존 상황이 아니라 해도 말이다.
인물들의 결정, 우리 마음 속 선택지의 축소판
이 영화는 단순히 ‘어떻게 살아남는가’가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특히 ‘영석’이라는 인물은 한 사람의 리더가 되어가며 점점 달라진다. 그 변화가 불편하면서도 공감되었다. 그는 처음엔 평범한 공무원이었다. 소극적이고 착한 이미지. 하지만 위기 상황이 길어질수록 그의 얼굴엔 책임감과 광기, 그리고 두려움이 겹쳐진다.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을 본다. 어떤 조직에서든, 급박한 상황 속에서,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사람을 밀어내며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이들. ‘명화’와 ‘두열’의 관계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부부지만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누군가는 ‘안’을 지키고자 하고, 누군가는 ‘밖’과 연결되기를 원한다. 이 영화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 갈등이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재난 앞에선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아니, 재난이 아니어도 우리는 그렇게 다르지 않나. 이 영화는 인물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얼마나 우리 안에도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그게 무섭고, 그래서 더 진심으로 다가온다.
이기심과 책임, 영화가 던지는 무거운 질문
‘우리만이라도 살아야지’라는 말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은 이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타심은 사라지고, 책임은 회피되고, 모든 상황이 ‘정상’처럼 돌아가는 그 공간. 아이러니하다. 사실 이 영화는 특별한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속삭인다. ‘너도 이 상황이면 그렇게 하지 않겠어?’라고. 사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그런 면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재난 재해, 경제 위기. 우리는 위기 속에서 서로에게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고, ‘내 사람’과 ‘남’을 나눈다. 그리고 점점 더 작은 울타리 속으로 숨는다. 영화는 그것이 얼마나 쉬운 선택이며, 동시에 얼마나 무거운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황궁아파트는 현실이다. 벽을 세우고, 경비를 강화하고, 시스템을 만들며 평온을 유지한다. 그런데 그 안의 사람들은 점점 괴물이 된다. 제도를 만드는 건 인간이지만, 그 제도에 물드는 것도 인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에게 말 없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지금 이 모습, 당신과 닮지 않았나요?"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을 돌아봤다. 나도 나만의 황궁아파트를 짓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결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준다. 이 질문은 불편하고, 무겁고, 가끔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질문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 이 영화는 그저 스릴 넘치는 재난 영화가 아니다. 생존의 윤리를,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금 당신은 어떤 아파트에 살고 있나요? 그 벽 너머의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있나요?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극장을 나왔다면, 당신은 이미 이 영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