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동화에 피 묻은 손길이 닿았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알던 백설공주를 송두리째 부순다. 그냥 드라마가 아니다. 이건 일종의 심리 퍼즐이고, 상처의 기록이며, 어떤 여성들의 조용한 복수극이다. 한때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였던 내가, 이 드라마 앞에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이유는 단순한 스릴이 아니었다. 나를 닮은, 혹은 우리가 되는 백설공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설공주 재해석 : 누가 진짜 악인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는 말이 이토록 섬뜩하게 들릴 수 있던가. 드라마는 이 질문에 아주 다른 시선으로 접근한다. 이 작품 속의 백설공주는,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공주라는 이름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이며, 그 속엔 다층적인 분노가 스며있다. 악역으로 보이던 계모는 실제론 피해자이기도 하고, 백설공주는 착한 얼굴을 한 가해자일 수도 있다. 도대체 누가 악이고, 누가 선인가? 감독은 이 물음을 끝까지 유예한다. 그게 이 드라마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다. 쉽게 대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추측하고, 흔들리고, 결국 거울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너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니?’라고. 가끔 드라마보다 내가 더 무서웠다. 왜냐하면, 나 역시 누군가의 거울 속에서 악당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0대의 나는, 어떤 백설공주인가. 혹은, 어떤 계모인가. 드라마는 내게 그 질문을 놓고 떠나버렸다.
여성 서사와 심리 서스펜스의 만남
이 드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플롯이 반전이라서가 아니다. 여성 서사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은 없다. 있다 해도 배경처럼 존재하고, 모든 갈등과 충돌은 여성들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점이 처음엔 낯설었다. 우린 늘 ‘왕자’가 등장하길 기대해 왔으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르다. 백설공주, 계모, 또 다른 여성 캐릭터들… 모두가 복잡한 사연과 상처를 가진다. 그들은 때론 서로를 의심하고, 때론 구원한다. 이 관계의 뒤틀림이 드라마의 스릴러 요소를 탄탄하게 만든다. 심리적 긴장은 대사보다 시선과 침묵에서 온다. 웃고 있어도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뒤통수가 서늘하다. 나처럼 살아온 여성이라면, 이 드라마 속 대사 몇 줄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지도 모른다. ‘사랑받기 위해 착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죄가 될 줄은 몰랐어.’ 이 말이, 참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지 못한 백설공주의 이야기를 이제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복선과 반전 : 거울을 깬 서사 구조
이 드라마는 구조적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에피소드마다 단서가 흩뿌려져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 퍼즐이 맞춰진다. 특히, '거울'이라는 모티프는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거울 속의 나, 거울 밖의 나, 그리고 거울을 깨고 나오는 나. 이 세 가지 자아가 충돌하는 방식은 마치 심리 드라마 같기도 하고, 꿈속을 걷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중반 이후 등장한다. 백설공주가 진짜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동화가 아니었다. 이건 기록이었다. 여성의 상처, 침묵, 그리고 분노의 기록. 그리고 그 분노가 어떻게 뒤틀려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감독은 꽤나 고약한 방식으로 진실을 보여준다. 마치 ‘네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그 진실이 바로 이거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해방된다. 드디어 누군가가 이 이야기를 해줬기 때문이다. 감춰둔 이야기.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결론 : 당신도 백설공주일 수 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단순한 장르물이 아니다. 이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경험이고, 익숙한 이야기의 껍질을 깨는 연습이다. 반전과 서스펜스를 넘어, 감정적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당신도 이 드라마를 본다면,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진짜 나로 살고 있었나?"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추천’이 아닌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