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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로리로 본 한국교육의 민낯

by rlawlsgml 2025. 4. 7.

더글로리 한국교육의 민낯

 

드라마 <더글로리>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 한국 교육의 민낯을 세상에 던졌다. 교실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이 누군가에겐 지옥이 되고, 피해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드라마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너무도 현실 같았기 때문이다. 더글로리를 통해 우리 교육이 가리고 있던 어두운 그늘을 정면으로 바라보자.

더글로리 속 교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솔직히 말해 더글로리를 처음 봤을 땐, 그냥 또 하나의 센 척하는 드라마겠거니 했다. 그런데 몇 화 지나면서 웃음이 사라졌다.
교실 바닥에 앉은 문동은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표정, 무력한 채 눈 감아버리는 어른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
이게 드라마야? 아니면 그냥 교복만 입은 어른들 이야기야?

우리 모두는 기억한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애의 표정은 또렷하다. 늘 혼자였고, 말수 적었고, 누군가의 장난감이었다.
나는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더 큰 폭력이었다.
더글로리는 그걸 끄집어낸다. 눈 감은 방관자들, 조용히 피하는 친구들, 무관심한 교사. 그리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성적 중심 교육 시스템.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 잘하면 다 괜찮다"는 식의 논리가 있다. 그래서 괴롭히는 애도, 잘 피해 다니는 애도, 그냥 점수만 잘 받으면 넘어간다.
학생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순간, 교실은 그냥 작은 사회가 된다. 폭력도, 서열도, 공포도 그대로다.

피해자의 시간은, 가해자의 시간보다 느리다

문동은은 18살에 멈췄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피해자는 어른이 되어도 멈춰 있다.
단지 맞았던 게 아니다. 인격이 짓밟혔고, 이름이 사라졌고, 존재가 부정당했다.
그런데 어른들은 말한다. "지나간 일이다." "이제는 잊어라."
진짜 잊어야 하는 건 가해자인데, 왜 늘 피해자에게만 참으라고 할까?

더글로리가 무서운 이유는 복수가 아니라 그 시간의 밀도다.
모든 장면이 느리게 흘러간다.
피해자가 살아온 시간은 그렇게 무겁고, 아프고, 도망치고 싶었던 시간이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듯이.

그리고 이 드라마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어른인가요?
학생이 고통받는 걸 본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건가요?
그 질문 앞에서 많은 사람이 말을 잃는다. 나도 그랬고.

한국 교육, 진짜 사람을 보지 않는다

우리는 '입시'라는 굴레 속에서 너무 많은 걸 놓쳤다. 아이의 표정, 친구 관계, 수업 분위기, 교사의 권위.
다 필요 없고, 성적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 학교폭력도 수치화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간다.
더글로리에서 교감이 "부모가 문제야"라고 말하던 장면, 너무 익숙하지 않았나?

사실 시스템이 문제다. 신고하면 되지 않냐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시스템도 결국 ‘성적 순’으로 운영되니까.
폭력을 저지른 학생이 좋은 대학 간다면, 결국은 '성공'이다. 피해자는요? 그냥 지워진다.
보고서 한 줄로 정리된다.
"학생 간 사소한 다툼."

그렇다면 우리는 이걸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할까?
아이의 눈을 보고, 교사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고, 무엇보다 학교라는 공간의 본질을 다시 물어야 한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것인데, 우리는 사람을 숫자로, 서열로, 등수로 만들어왔다.
그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교육의 민낯이다.

 

<더글로리>는 끝났지만, 그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드라마일 뿐"이라 말하겠지만, 그 드라마 속엔 분명히 우리가 있다.
눈감고 살았던 지난 시간, 외면했던 폭력, 침묵했던 교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교육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걸.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일 수 있다는 걸.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해, 조금 더 나은 교실을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