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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설국열차 메시지 (사회적 의미, 생존)

by rlawlsgml 2025. 4. 13.

기후위기 속 설국열차 메시지 사회적 의미 생존

 

설국열차는 단순한 액션영화도 아니고, 단순한 SF영화도 아니다. 이 영화는 차가운 선로 위에 뜨겁게 녹아내리는 인간성,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복잡하고 불편한 진실을 얘기한다. 특히 2025년을 사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현실 앞에서 설국열차는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지금, 어쩌면 진짜 설국열차를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의미 : ‘차칸’ 세상이 만들어낸 철의 열차

설국열차는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현실의 축소판’이다. 영화 속 기차는 살아남은 인류의 전부이며, 그 속에 고스란히 사회의 계급구조가 담겨 있다. 앞칸, 중칸, 뒷칸. 태어날 때부터 자리가 정해진 인생. 스스로 바꿀 수 없는 룰. 이게 과연 영화 속 허구일까? 인생의 중간쯤 왔다고 생각했는데, 중간칸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열심히 산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탈선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여한 함정일지도. 설국열차 속 윌포드는 열차를 유지시키기 위해 질서를 강요하고, 사람들은 그 질서에 적응한 채 살아간다. 그런데 묘하게 현실도 비슷하다. 무언가에 반항하면 '문제적 인간'이 되고, 순응하면 그냥 흘러간다. 사회적 의미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당장 옆자리 동료의 한숨, 골목에서 들려오는 사장님의 분노, 아이 학원비 걱정하는 엄마의 침묵. 이 모든 것이 ‘설국열차의 뒷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누가 그들을 끌어올릴 것인가? 아니, 우린 진짜 올라갈 수 있긴 한 걸까?

생존 :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

기후위기. 이제 그 단어는 뉴스의 스쳐지나가는 멘트가 아니다. 여름이면 40도, 겨울이면 폭설. 이상기후가 평범해졌고, 식량 위기가 피부에 닿는다. 설국열차는 바로 이 생존의 문제를 드러낸다. 인류는 멸망했고, 열차는 유일한 생존수단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먹고’, ‘버티기 위해 타협한다’. 살아남는 것과 살아가는 것. 이 두 개념은 같아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영화 속 뒷칸 사람들은 단백질 블록 하나에 목숨을 걸고, 앞칸 사람들은 스시와 와인, 요가와 댄스에 빠져 있다. 생존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지녔지만, 그 방식과 가치관은 너무 다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2024년, 에어컨 없이는 잠을 잘 수 없고, 물 부족 기사엔 무감각해진 우리. ‘나는 아직 괜찮으니까’ 하며 외면하지만, 설국열차는 결국 뒷칸부터 무너진다. 기후위기라는 문제 앞에서 ‘내 일은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연대. 그것만이 진짜 생존이 아닐까.

인간성 : 차가운 열차 속 뜨거운 심장

설국열차가 끝내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성’이다. 절대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인간은 선택한다. 배신할지, 지킬지, 희생할지. 쿠르티스는 혁명을 주도하지만 끝내 진실을 마주하고 무너진다. 그의 고백은 인간의 어두운 본능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아이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마지막 선택은 인간성의 불씨를 피워낸다. 그리고… 난 이 부분에서 울었다. 나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자식이고, 또 누군가의 희망이고 싶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사회불평등, 생존경쟁 속에서 우리가 잃어선 안 되는 것. 그건 바로 인간다움이다. 설국열차는 냉혹한 시스템 속에서도 ‘희생’과 ‘연대’를 통해 인간이 인간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 아이와 여자아이가 눈 덮인 세계에서 내려서 설원을 바라본다. 곰 한 마리가 보인다. 희망일까? 두려움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살아 있다는 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결론 : 요약 

설국열차는 단순한 기차 영화가 아니다. 기후위기, 계급구조, 인간성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타고 있나요?” 2025년, 지금 우리는 모두 설국열차에 타고 있다. 앞으로 갈지, 멈출지, 뛰어내릴지. 선택은 우리 몫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